브랜드 콘텐츠 제작사 플로바, 그리고 요가
브랜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고, 새로운 형태로 빚어내는 과정입니다. 수많은 의견을 조율하고, 때로는 정반대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이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죠. 마감은 늘 촉박하고, 완벽을 향한 수정은 끝이 없습니다.
Jan 28, 2026
우리가 겪어온 시간들
플로바의 구성원들은 모두 10년 이상 디자인 업무와 기획을 해온 사람들입니다.(그린: 저는 이제 7~8년차 랍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일을 사랑하며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과정 속에서 번아웃이나 슬럼프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어느 순간 컴퓨터 앞에 앉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고, 어떤 이는 아무리 애써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공허함을 경험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연락이 오는 게 두려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전화벨이나 메시지 알림만 울려도 심장이 뛰고, 그 연락을 확인하는 게 무섭더라고요. 심한 경우엔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일인데 말이죠.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우리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을 겁니다. 일에 몰두하느라, 마감을 맞추느라,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느라 정작 우리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거죠.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던 건데, 우리는 그걸 무시하고 계속 달렸습니다.
그래서 플로바를 만들 때 다짐했습니다. 좋은 작업을 오래 지속하려면 우리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고. 그저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니라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요.
어느 날 문득
플로바의 그린 디렉터님은 오래전부터 요가를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으로 요가를 선택했고, 꾸준히 수련해왔죠. 그리고 마침 요가 강사 자격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자격 과정을 마무리하려면 교육과 실습 시간을 채워야 했는데, 제안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수업도 증빙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실습 시간을 보태는 게 가능할까요?”
그린 디렉터님은 확인해보고 증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죠. 사실 조심스러운 제안이었습니다.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고맙게도 그린 디렉터님이 흔쾌히 응해줬습니다. 요가를 통해 얻은 것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나눌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첫 수업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다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업무 중에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 이렇게 필요했구나, 싶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이후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거 계속하면 어떨까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과 한 주를 마무리하는 목요일 오후에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몸을 깨우고 한 주를 시작하고, 목요일 오후에 한 주의 피로를 풀어내는 리듬이 좋았거든요.그런데 몇 주 해보니 월요일 아침은 연락이 쏟아지는 시간이라는걸 알았습니다. 주말 동안 생각을 정리한 클라이언트분들이 월요일 아침에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가 수업 중에도 연락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온전히 집중하지 상황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화요일, 목요일 오후로 바꿔서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피스 9층 테라스, 가끔은 양재 시민의 숲으로
우리의 요가 스튜디오는 9층 테라스입니다.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매트를 깔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날씨가 유난히 좋은 날에는 양재시민의숲까지 나가기도 합니다. 사무실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곳인데,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하는 요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최근에는 LA로 워크숍을 갔다가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도 했었습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는 요가는 특별함이 시간이었습니다.
여름과, 겨울
처음엔 한여름이나 한겨울엔 쉬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너무 덥거나 추우면 야외에서 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여름과 겨울이 너무나 길고, 그냥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좁더라도 실내에서 의자를 치우고 매트를 깔기로 했습니다. 공간은 좁아도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우리를 위한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 번 새로운 시퀀스
그린 디렉터님은 매주 그 주의 분위기와 우리 컨디션을 보면서 시퀀스를 새로 짜옵니다. 같은 수업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주는 좀 더 역동적으로, 어떤 주는 조금 더 차분하게.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긴장도가 높을 때는 긴장을 풀어주는 동작들로 구성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주에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동작들을 준비합니다. ('때로는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양적 아사나 위주의 시퀀스를 준비합니다.' 정도는 어떨까요?)
그 주에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아는 것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서로에게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현재 몸의 변화에 대해서, 오늘 느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요가 수업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넘어서, 서로를 챙기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하기로 했으면
우리 같은 업에서 모든 구성원이 항상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정말 바쁜 경우, 긴급한 일이 있는 경우도 있죠. 처음엔 그런 날이 오면 “다음에 하시죠” 하고 미루었던 적도 있습니다. 모두가 참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시간이 되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1:1로라도 수업을 진행합니다.
회사에서 하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들이 처음엔 열심히 하다가 바빠서 흐지부지 끝난 걸 많이 봤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운동 프로그램, 스터디 모임, 개인 작업…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사람이 안 모인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사라져간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참여하지 못해도, 장소가 완벽하지 않아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도. 일단 계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일을 오래,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좋은 콘텐츠는 건강한 제작자에게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지쳐 있으면 제대로 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제작 환경을 만들려면 우리 몸과 정신을 돌보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겠죠. 누군가에게는 산책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러닝으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어떤 이는 요리로 자신을 돌봅니다. 우리한테는 요가와 명상이 잘 맞았습니다. 함께 모여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특별한 장비나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 일을 오래,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찾은 우리만의 방식입니다.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더 나은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나은 작업물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매번 최고의 수업을 준비해주시는 그린 디렉터님께 감사드립니다.

